지난번이었나 지지난번이었나, 게으름을 이기고 좀 더 성실하게 원신을 해야겠다는 뉘양스의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래놓고 거의 일주일 넘게 원신 플레이 글을 안 썼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설날에 여러 일이 겹치다보니 원신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고, 두 번째는 슬슬 월정액도 끝나서 굳이 매일 접속이라도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고, 세 번째로는 아는 분과 로스트아크에 복귀해서 아브렐슈드 레이드에 도전하게 된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게임 개발에 손 대보겠다고 유니티에 박치기 했다가 버전 업데이트를 개발 도중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언제나 내가 틀렸지 컴퓨터가 틀린 게 아니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 대체 XX 왜 똑같이 코드를 따라 썼는 데도 작동을 안 하는 건지 속이터져 지르던 내 비명이 무한히 하찮아지는 경험을 얻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로스트아크 아브렐슈드 레이드 앞에서 새로 패턴 학습하기가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면서 출석만 대충 해왔었는데, 간만에 복귀하는 김에 호기심에 2넴 내부 프로켈 연습모드를 해봤다가 재미가 들려서 내부 딜러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이다. 매일 카던 게이지 빼고 에포나 게이지 빼는 것보다 보상도 없는 그 프로켈 연습모드가 더 재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브 1~2관 레이드에 직접 가서 프로켈을 만나면 묘한 우정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 개발에 박치기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판타지가 섞인 세계관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존윅이라는 취향을 달랠 길이 없어, 이렇게 되면 내가 직접 만들고 만다라는 안일한 발상으로 발을 들였다가, 유니티 리모트, 드래그 앤 드랍, 그리고 버전 업데이트와 깃허브 저장소 연동 앞에 머리가 깨지고 만신창이가 되버려 한동안 의욕을 잃었더랬다.
사실, 위의 이유도 이유지만 원신을 간간히 하기는 했었다. 로스트아크가 재미있다고 해서 원신이 딱히 재미가 없는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맨땅에 헤딩하는 가챠게임, 혹은 MMORPG 게임이 그러하듯이, 많은 초기 자본을 투입하거나 그걸 대신할 만큼의 시간을 쏟아붓지 않으면 한창 현역인 컨텐츠를 즐기가 어려워 결국 겉만 핥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해등절 이벤트인가 뭔가를 한다는데, 나는 지금 벤티 이름조차 게임 내에서 보지 못한 상황이니 해등절이니 니하다니 하는건 먼 얘기일 뿐이다. 사실 로스트아크가 특이한 케이스로, '메'나 '던'이 터지고 사람들이 새로운 온라인 RPG 게임을 찾아 엑소더스를 하던 시절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메타로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현역 레이드 코앞까지 밀어올려줘서 큰 과금 없이도 게임의 주류 흐름에 편입될 수 있게 해준게 컸다. 로스트아크의 성공 이후로 다른 한국의 온라인 RPG들도 유저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는게 눈에 띌 정도로, 사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특이한 전략이었다. 그러다보니 새삼 무과금~저과금으로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 입문해서 그 주류 컨텐츠까지 도달하는게 어렵다는 것을 더더욱 실감하게 됐다.
뭐 그런데, 어쨌건 지금 하고싶은 얘기는 로아가 어쩌내 하는 얘기는 아니고, 종종 원신을 하긴 했고 재미도 있었지만 그렇게 막 드라마틱하게 무언가를 경험하지는 못했던 것도 원신 플레이 일지 글을 안 쓴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 중간에 퀘스트 2어개 한 것만 빼고는 또 한눈만 팔고 이 길 저 길로 새다가, 게임은 제법 했는데 별로 진도 나간게 없었다.
그래도 그간 플레이하면서 있었던 일을 적어보자면, 가슴 발도 여신님 픽업이 지나고 알하이탐인지 하는 새로운 캐릭터 픽업이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캐는 또 칼잡이가 아닌가?! 공짜 보석을 얻어먹기 위해 체험에 들어가서 또 남캐는 칼만 휘두르고, 심지어 같이 파티로 넣어준 활잡이는 또 여캐라는 현실에, 나는 내 취향이 그렇게도 특이하고 소수인걸까, 모두와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IT 강국 한국의 21세기 한가운데서 고독함을 느꼈다. 심지어 해등절 이벤트 관련된 이미지들을 좀 보다보니 그 우인단인지 보수단인지 뭔지 하는 잡졸들이 총까지 들고다닌 다는 사실에, 왜! 나! 철수는! 총을 쏠 수가 없어! 하면서 좌저했고, 여기에 꼴(?)받아가지고 유니티 박치기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맨 윗짤을 보고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재화가 모였길래 10연차를 돌려봤더니 진 단장님이 뜨셨다. 난 앵간하면 주인공 캐릭터를 파티에서 빼지 않는 편이라 풍속성이 겹치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예쁜 여캐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같은 속성이 겹치면 기술 바리에이션이 줄어서 손해만 볼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뒤져봤더니 같은 원소 캐릭터를 중복으로 파티에 넣으면 그거대로 메리트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꽤나 감탄했는데, 유저가 전략적, 계산적인 선택이 아니라 취향에 의해 손해를 볼 상황이 됐을 때에도 어느정도 그걸 감수해도 될만한 메리트를 준비해뒀다는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스템을 배끼기만 한 파쿠리게임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라고 하기엔 사실 초반부 게임을 하면 할 수록, 아 왠지 양심이 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은 여전히 끊임없다.)
그렇게 합류하게 된 진 단장님을 써보다가, 레벨이 낮아서 이제 슬슬 탐험하기 빡세진다는 생각에, 그냥 그동안 모아놓은 레벨업 재화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필요하면 또 나중에 어디서 얻을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뭔가 복잡한 패시브가 있고, 기술에도 기믹이 있는 것 같은데, 당장 스토리 진도 뺄 시간도 없는데 그걸 읽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그래도 진은 원소적인 특징 외에도 강공격을 하면 적을 띄워서 천천히 떨어지게 만드는데, 당장은 이걸 어디다 활용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오히려 콤보가 끊기기만 했다. 공중에 뜬 채로 활이라도 쏴야되는걸까? 그 외에도 여타 가챠류 게임처럼 레어도가 높은 캐릭터의 경우 패시브가 더 많이 해금되 있다든지 해서 그걸 캐릭터 창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텍스트들을 다 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생각해보면 여타 수많은 게임이 그렇다, 페이커 같은 프로게이머는 롤의 챔피언의 스킬 계수와 아이템 효과를 거의 모두 암기하고 플레이할 수도 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걸 활용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걸 실현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지만. 유희왕이나 여타 전략 게임에서 쉽게 접해볼 수 있는데, 어떠한 컨셉과 메커니즘 장단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면 사실 그 모든 계산을 일일이 다 이해하면서 플레이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반대로 이를 잘못 구현하면 뭔가가 내 앞에서 벌어지는데 플레이어가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마치, 어째서인지 소환이 되지 않던 내 프레데터 플랜트 베르데 아나콘다처럼 말이다. 그게 트라이브리게이드 몬스터의 특수소환 제약이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지난번에 바람의 날개를 한 번 잘못 썼다가 몬드의 이슬이 되어버린 뒤, 꼬치구이의 위대함을 깨닫고 요리를 좀 만들어 쌓아두기로 했다. 야숨에서도 요리 버프의 효과가 워낙 강력해서 재료를 이것저것 넣어가지고 요리를 쌓아두고 다녔는데, 사실 요리 시스템이 신박하긴 했지만 재료를 모으는 것부터 요리를 하는 것까지 후반에 간다고 더 쉬워지거나 하는 게 없이 다 일일이 모아서 일일이 들어서 일일이 요리해야 하는 점은 참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게임에서 처음 한 번 만들면 그 레시피를 그대로 만들 때에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데도, 야숨에는 그런 시스템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시간초가 빡빡한 도핑을 하고 전투를 해야되는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소울류 게임에서 보스를 가지고 노는 영상 등에서 하는, 마법 버프와 음식 버프를 떡칠하고 보스방에 입장하는 그런 플레이 말이다. 그래서 요리 시스템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원신의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반에 가면 전투에서 필수적인 요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요리를 먹고 시간 내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처럼 요리 재료 모으기와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요리도 훨씬 간단하고, 심지어 한 가지 요리를 일정 횟수 이상 하면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은가?!
지난번에 NPC마다 대화 선택지를 일일이 봐야하는게 매우 불편함에도 놓치는 게 있을까봐 넘기지 못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후에 필드를 뒤지다가 퀘스트를 주는 NPC는 머리 위에 마커가 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점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던데, 야숨의 경우에는 어떤 NPC가 퀘스트를 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NPC에 대화를 해봐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오히려 RPG 게임에서 몰입감을 높여주고, 해당 NPC와 대화가 어떤 일로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 넣어 준다. 반면에 무언가를 놓치기 싫고 그렇다고 모든걸 다 일일이 파보면서 게임하 시간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적당히 들어가 있는 게 오히려 편리하고 좋다. 이건 유저층에 대한 선택의 영역일 것이다.
지난번에 한 번 말했다시피, 맵을 탐험하다 보면 마치 야숨에서 그랬던 것처럼 간단한 기믹들을 풀면 보상을 주곤 한다. 이번에는 길을 가던 와중에 정체 불명의 결계에 막혀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원소 반응을 이용하는 걸까 싶어 이것저것 스킬을 써봤으나 반응이 없었는데, 곰곰히 살펴보니 위가 뚫려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예상대로 위를 통해 낙하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 이런 퍼즐은 참신하기도 하면서, 메트로바니아 게임처럼 위치를 기억해뒀다가 능력을 얻고서 다시 와야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즉시 해법을 준다는 점이 좋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 보코블린, 아니, 츄츄족 캠프 건물의 창문이 상당히 넓음에도 그 창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지난번 기사단 건물 2층으로 가는 계단도 그렇고, 자유롭게 필드를 돌아다니는 게 핵심인 게임에서 척 보기에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길을 별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은 감점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창문을 못 지나간다고 해서 눈 앞에 무언가를 얻지 못하는 등의 손해감을 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야숨과 달리 중간에 음식을 먹는다고 없던 스태미너가 갑자기 솟아나지는 않는다. 아직 그런 음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게 핍진성에 맞지 싶기는 한데, 무리하게 벽을 오르다가 중간에 스태미너가 떨여졌는데 갈 곳이 없으면 그대로 떨어져서 땅에 닿기 직전에 바람의 날개를 펼쳐 데미지를 없애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예전에, 특정 원소에만 반응하는 기믹이 있은 던전에서 해당 속성을 챙겨가지 않으면 플레이가 힘들어질텐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했더니, 나중에 따로 던전에 진입하면서 파티 구성시에 왼쪽 위에 추천 원소를 따로 표시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플레이어가 결국 여러 캐릭터를 골고루 키우게 해서 더 많은 재화를 소모하게 한다. 미호요가 파쿠리를 할 지언정 바보는 아닌 것이다.
야숨 뿐만 아니라 사펑,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같은 오픈월드 게임을 하다보면 가끔 몇 걸음 더 걸어가서 필드 경계를 넘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몬스터가 급격히 쎄지고는 한다. 레벨 디자인 상으로 더 강한 몹이 나오는 지역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 핍진성이 아주 떨어지는 상황이면서도 가끔 플레이어가 지나치게 고레벨인 몬스터를 만나 의문사를 하게 됨으로서 필드 탐험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숨에서는 고렙 지역에 진입하게 되면 맵 이름과 함께 고렙 지역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미리 알려준다. 좀 편리하고 쉬운, 기발하진 않은 해법이지만 유저 편의성 측면에서는 좋은 선택이긴 하다. 특히나, 야숨에서 인벤토리를 늘리겠다고 하이랄을 우회하여 강행군을 하다가 지나가던 검은 츄츄족, 아니, 모코블린의 화살 한 방 맞고 골로 가던 경험이 더더욱 원신의 선택이 좋다고 느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