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플레이 일지/하루 1 시간 원신

원신 7일차

'삶은 달걀을 영어로 하면? Life is an egg'라는 썰렁한 말장난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장난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삶이 마치 달걀처럼 겉으로 보기엔 둥글고 제법 단단해보이지만, 완전히 둥글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잘 굴러가지도 않고 조금만 힘을 주면 쉽게 깨져버린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다, 내일도 모레도 어제와 오늘 같은 날들이 당연히 계속될 것만 같지만, 하루 아침에 삶이 달라지고 어제 당연했던 것들이 오늘 사라져버리곤 한다. 마치 이제는 까마득한, 마스크 없이 외출하던 날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철수의 목숨도 그러했다.

누구나 다 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스페이스바 한 번을 잘못 눌러서 떨어지기 전까진 말이다.

 또다시 정처없이 맵에 마커만 찾아 다니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단 받아둔 사이드 퀘스트를 깨는 데 집중하려 했다. 그래서 케이야가 준, 누가봐도 도둑놈들의 미끼 역할을 해야하는 보물 찾기 사이드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풍차 위를 뒤지다가 마침내 목적지를 찾았다. 바보와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 연기인 나는 기왕 높은 곳에 올라온 김에 더 높이 올라가서 패러세일, 아니, 바람의 날개를 통해 한 번에 건너가려고 했다. 사실 건너가기 불가능한 높이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전방주시 태만이었을 뿐.

철수의 첫 사인은 실족사였다. 아아, 그렇게 영희는 찾지도 못하고 몬드의 이슬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뜬히 도착할 줄 알고 뒤를 돌아보며 가족과 대화를 했는데, 아뿔싸. 내가 도착도 하기 전에 벽에 달라붙은 줄 알고 기어오른다고 스페이스를 한 번 더 눌러버린 것이다. 그렇게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철수는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 m 풍차탑에서 떨어졌고, 말 그대로 가루가 되서 즉사했다. 자기보다 레벨이 2배는 거뜬히 넘는 적들에게 둘러쌓였을 때도 살아남아 물리쳤던 철수의 기념비적인 첫 죽음이었다. 뭐, 당연히 RPG 게임이니 한 번은 죽겠지 했는데 이렇게 하찮고 갑자기 첫 죽음을 맞을 줄이야.

새..생선구이를 먹으면 돼.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생선구이를 먹으면 금방 회복 될수있지

 쉽게 얻은건 쉽게 사라진다고 했던가, 쉽게 죽어서 그런지 딱히 살리는 데에도 특별한 게 필요하진 않았다. 그저 잘 구운 생선 구이 하나로 살아날 수 있는 세상이라니. 몬드는 거친 만큼 죽은 자들에겐 관대한가보다. 아니면 생선구이라는게 그만큼 영험하고 개쩔거나. 헛소리를 빼고 생각하더라도, 캐릭터가 죽는 거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픈 월드 게임을 하다보면 온갖 버그와 의도치 못한 상황,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른 플레이어의 동선 등으로 갑작스럽게 죽게 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보통 싱글 RPG 게임들은 빠른 저장 등을 통해 쉽게 저장을 할 수 있게 하여 플레이어가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되돌려야 하는 일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저장을 잊고 있었다가 죽었다면, 현타가 끝날 때 까지 잠시 게임을 끄고 다른 것들을 하고 와야겠지만. 어찌되었건, 온라인 게임인 원신은 그런 빠른 저장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한 음식으로 쉽게 캐릭터를 부활할 수 있게 설계한 듯 하다.

생선구이 하나로 붙어있는 풍전등화 같은 목숨, 하지만 강인한 철수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야숨도 원신도, 마음껏 벽을 기어올라갈 수 있기에 특별한 오픈 월드 게임이지만, 벽을 기어올라가는 것은 사실 그 두 게임 모두에게 가장 재미없는 컨텐츠다. 다만 그 인내의 열매가 달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성실히 풍차를 기어오르기로 했다. 사람은 잃고나서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특히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까지가 의도인지 모를 오브젝트 배치를 볼 수 있다. 스카이림이나 소울류 게임은 이러한 오브젝트 배치에도 설계가 있고 숨겨진 스토리들이 있는데, 대체 무슨 사연이 있으면 사람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성벽 위나 건물 지붕 위에 가게 게시판과 홍보 포스터가 날아와 있는걸까. 그 풍마룡인지 뭐시깽인지가 일으킨 폭풍의 여파를 보여주는 것일까?

풍마룡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몬드에 남겼다.
지난번엔 미안했다 강아지야. 너는 여전히 편견 없이 다가오는구나. 세상이 너처럼 남들에게 자비롭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야숨을 끝까지 재밌게 플레이했던 아는 지인 분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지도부터 전부 밝혔다고 하셨다. 그와 반대로 나는 가급적이면 퀘스트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지도가 밝혀지지 않은 곳을 피해다녔다. 그게 개발자들의 레벨 설계 의도에 맞는 플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특별한 이유 없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레벨이 높은 적을 만나게 되는 것은 꽤나 불쾌한 경험이니까. 하지만 지난 번에 마주친 36레벨 짜리 필드 보스 얼음 나무도 그렇고, 꼭 그게 개발자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맵을 밝히기 위해 탐험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일 수도 있다. 생각없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쫓다보니 나도 어느샌가 밝혀둔 지역을 벗어나 있었다. 목적지가 몬드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나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흥미로운 것들을 또 홀린듯 건드리다보니 정작 길에서는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샌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도 기왕 나온 김에 가장 가까운 신상만 밝혀두고 일일 컨텐츠만 깨고 돌아가려고 했다. 사실 그렇게 지도 밖으로 나온 곳에 멀쩡한 마을이 있었다. 어느샌가  무의식적으로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역은 지나치게 피하고 밝혀둔 지역만 돌아다니려고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짜피 언젠간 뚫고 가서 밝혀야 할 곳인데 말이다.

밝혀둔 지역 밖에 웬 마을인가 했는데, 정작 그 '웬 마을'을 설명해줘야 할 표지판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가까이 가면 읽을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게임을 하다보면 같은 나무 상자나 나무 통이어도 필드에 널린 것들은 파괴가 되는 반면 마을에 속한 오브젝트는 파괴가 불가능하곤 하다. 지난번에 항구에 있던 상자들도 그랬고. 그런데 마을에 있던 지푸라기는 궁금해서 불화살로 쏴봤더니 이건 또 홀랑 타버렸다. 사실 마을에 와서 상자를 부수고 다니는 것도 어지간한 정신병자나 강도가 따로 없긴 한데, 그래도 게임적 허용으로 봐주지 않는가. 하여튼 지난번에 마주친 상자는 안 깨지길래 이것도 불에 안 탈까 싶어 쏴봤는데, 어찌됐건 지푸라기는 비가역적으로 잿더미가 되버렸다.

하하, 하...어..음..그냥 궁금했어요. 하하, 왜 상자는 안 부서지면서 지푸라기는 어쩜 이리 잘탄담, 하하

 쫓아가면 숨겨진 보상으로 이끌어주는 정령. 사실 이건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도 엘든링처럼 쫓아가는 길에 룬베어를 두는 개같은 설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원신의 정령들은 배려심도 깊어서, 플레이어가 혹시나 따라오다가 놓칠까봐 중간에 멈춰서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놓치지 않게 기다려주는 건 좋은데, 솔직히 이정도면 따라가는 걸로 판정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좌뇌: 정신차려, 너 퀘스트 깨야돼! / 우뇌: 닥쳐봐, 지금 저기 신의 눈이 있잖아!

 내가 처음 원신 플레이 일지를 쓸 때, 아마 '여긴 그 개같은 첨탑 안 기어올라가도 되서 좋다'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첨탑을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원신도 호락호락하게 신상을 열게 해주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슬 정말로 좋은 캐릭을 얻거나 캐릭터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또 기껏 무과금으로 모은 재화를 낭비하고 싶진 않아서 함부로 쓰지 못하고 쟁여두고만 있다.

처음에 저게 뭔가 싶었다. 에이, 적은 아니겠지, 하고 스스로를 속여봤으나 게임은 속지 않았다.
첨탑 기어오르는 것보다는 낫지 싶기는 한데, 나를 두 팔 벌려 오냐오냐 환영해주는 세상은 없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몬드로 돌아가 돌아다니는데, 우리 비상식량, 아니, 페이몬이 발길을 잡는다. 하여튼 모험가 길드 오면 좋은 일만 있어요 급의 판촉을 받고 가입했더니, 업적 외에도 모험 달성도에 따라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사실 생각없이 필드를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도 시간이 좀 아깝고, 퀘스트를 깨는 것 말고 뭘 더 해야하나 막막했는데, 플레이 가이드를 제공해주면서도 보상도 주니 필요한 시스템을 뻔하지만 적당히 세계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제공해준 것 같다.

하여튼 보상 준다는 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나.
게다가 어느정도 모험의 길잡이 역할도 하는 듯 하다.

 마커를 설정할 수 있는 퀘스트가 한 번에 하나 뿐이라서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는 지역으로 와버린 듯 하다. 하여튼 우인단이라는 놈들이 대충 음흉하고 꿍꿍이가 있는 놈들처럼 나오는데, 이름부터가 자기네 국기 들고 다니면서 보수적일 것 같은 무서운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야레야레, 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싶은데, 우인단 놈들이 가만 놔둘 것 같지 않는구만

 

'게임 플레이 일지 > 하루 1 시간 원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신 8일차  (0) 2023.02.07
원신 6일차  (1) 2023.01.15
원신 5일차  (1) 2023.01.12
원신 4일차  (1) 2023.01.08
원신 3일차  (0) 202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