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5일차
나도 사람이고, 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고, 직장 생활은 피곤하므로 원신을 매일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지난번에 월정액을 결제한 뒤로는 월정액 보상은 받으려고 매일 접속하는 편이긴 하다. 사실 그마저도 가끔 며칠 빼먹었다. 내 삶의 귀찮음과 피로가 몇 천원 보다는 비싸진 것이리라. 그래도 가급적이면 최대한 자주 접속해서 게임을 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Any way, 내 귀찮음과 별개로 원신은 잘 만든 게임이고, 재밌는 게임이다. 솔직히 맵을 이리저리 뒤지다보면 마치 솔로 플레이 위주의 패키지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게임이 기본적인 플레이가 무료인데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있는 메이저 게임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흔히 얻기 힘든 감각이다.
게임을 한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이쯤 오니 기사단 4성따리 3인방은 초반 4인 파티를 만들 수 있게 주어진 다는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 게임 자체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다른 유명한 캐릭터들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플레이가 크게 저해받는 기분은 아니었다. 여타 가챠 게임, 혹은 코레 게임이 그러하듯이 캐릭터의 레벨은 열심히 몹을 때려잡는 것보다는 특정 자원을 사용해서 강화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필드의 몬스터 레벨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5~6 레벨 언저리의 캐릭터로 10레벨 넘는 모코블린, 아니, 츄츄족을 때려잡는 데에는 별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다만, 지난번에 상점이나 가챠(기원)를 이리저리 뒤져보면서 픽업 캐릭터를 체험해보고 나니, 기본으로 주어지는 4성 캐릭터들의 스킬들이 심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난번 픽업 가챠에서 무슨 삿갓을 쓴 남자 캐릭터는 스킬을 쓰니 제자리에서 날아올라 이리저리 체공이 가능하던데, 단순히 캐릭터의 DPS를 떠나서 벽을 기어오르고 맵을 탐험해야되는 게임에서 그런식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능력은 대체불가능한 성능이니 말이다. 그래도 여차 가챠 게임에서 등급이 낮은 캐릭터의 등급을 올리면 추가 스킬들이 붙거나 하는 등 성능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도 돌파니 뭐니가 있는거 보면 이 기본 캐릭터들도 성능과 스킬 이펙트가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캐릭터가 합류하는 전투가 의례 그러하듯이, 이 던전도 새로 얻은 캐릭터를 활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새로 얻은 케이아라는 캐릭터는 얼음 원소를 사용하는 캐릭터인데, 역시나 해당 던전에서는 얼음 원소 스킬을 통해서 진행할 수 있는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든 게, 처음 던전에 들어갈 때 파티 구성을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특정 원소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한데, 필요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해당 던전 기믹을 미리 알지 못해서 필요한 원소 캐릭터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걸까? 각 원소별로 캐릭터를 하나씩 모두 주는건지, 던전 내에 필요한 기믹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는건지, 아니면 그런 기믹들을 우회할 수 있는건지, 그것도 아니면 이런식으로 특정 원소를 강요하는 기믹은 초반부 새로운 캐릭터를 줄 때에만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던전에서도 얼음 스킬 없이 진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 저 불 뿜는 불가마와 벽 사이를 점프로 비비다보니까 그 불가마 위로 올라가버렸다. 정상적으로 벽을 타거나 발판을 밟고 올라간 건 아니니 의도한 바가 아닌건 분명한데, 혹시라도 우연히 운이 좋아서 된건가 싶어서 내려가서 다시 반복해봤는데 몇 번의 시도로 반복해서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그 덕에 얼음 원소 스킬 없이도 해당 구간을 넘길 수 있기는 했는데, 이게 의도된 설계일리는 만무하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QA가 봤으면 '거 플레이어 새끼 좀 취지대로 하지 꼭 저 지랄이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페러세일, 아니, 바람의 날개가 있으니 당연하리만치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는 기믹이 나타났다. 이 게임은 나한테 매일 새로운 익숙함을 준다. 그렇게 간단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서, 또 무슨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나와서 폼을 잡고난 뒤 던전을 나왔다. 생각없이 퀘스트 지점까지 가는 길에 있는 모든 흥미로운 것들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아니 저 협곡의 틈바구니 아래에 뭔가 특이해보이는, 누가 봐도 필드 보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가장 흥분을 느낀다는 11 m 협곡 탑, 제가 직접 한 번 낙하 공격을 해보겠습니다! 이야아아아아앗! 하고 뛰어내렸는데, 아뿔싸. 36이라는 레벨을 보고 나는 피리 ㅈ됐음을 깨달았다.
아직까지 죽어본 적은 없어서 사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무슨 패턴이 됐든 스치면 철수의 여정은 거기까지리라 직감한 나는 당장 무기를 집어넣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다크소울의 보스전과 달리 보스전이 시작됐는데도 쌩까고 도망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엘든링도 필드 보스는 도망칠 수 있는 걸로 알고있기는 한데, 필드 보스 보고 도망칠 사람이 엘든링을 할까? 생각해보니 엘든링에서는 필드 보스를 보고 도망쳐본 기억이 없다. 어찌되었건 원신에서는 도망칠 수 있었다. 필드가 열려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오픈 월드 게임의 장점을 보여주면서도, 대뜸 내 레벨보다 까마득히 높은 레벨의 보스를 만날 수 있다는 오픈 월드 게임의 단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일단은 메인 퀘스트부터 깨자는 생각으로 퀘스트 마커로 향하기로 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퀘스트 마커 언저리를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었다. 가까이 가는 길에 눈에 띄는 모코블린, 아니, 츄츄족들을 잡고 상자를 열고 광물을 캐다보니 점점 갈수록 다음 퀘스트 지역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을 참 제작자의 의도대로 즐기고 있는 거겠지만, 원신만 계속 하고 있을 순 없으므로 일단 보이는 다른 것들을 무시하고 마지막 퀘스트를 향해서 가기로 했다.
역시나 마지막 던전에서는 나머지 기사단 캐릭터였던 리사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중갑 대검 메이드가 광물 하나는 잘 캐는 처자지만, 그래도 분명 던전에서 리사의 원소를 활용하는 구간이 나올테고, 나름 제작진들의 의도와 게임의 몰입을 고려해서 노엘을 빼고 리사를 넣고 플레이 하기로 했다.
던전에서는 자유롭게 벽을 기어오를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체들을 부술 수 있는 게임에서도 던전의 벽들은 부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건데, 탐험과 달리 전투에서 그런 지형적 자유도를 허락해버리면 AI가 정상적으로 상황을 대응하게 하고 전투 밸런스를 맞추는게 불가능에 가깝고, 퍼즐도 적절하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점프 높이도 높지 않은 원신에서 던전은 전투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형적으로는 꽤나 심심해지게 된다. 이 부분은 사실 야숨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던전에서는 벽을 자유롭게 기어오를 수 있는 것 이외의 기믹들을 활용하게 만든다. 던전 구석에 있는 상자 오브젝트들도 그 일환이다. 비록 대단한 활용처가 있거나, 특히 온라인 게임의 경우 엄청난 보상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마음껏 부술 수 있는 오브젝트는 심심한 던전 구조에 조금이라도 흥미거리를 추가해준다. 다만, 나는 이런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나같은 이득충에게는 이런 상자에서 나오는 사소한 재료템들은 두고 가기에는 아깝고 일일이 깨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계륵같은 요소다.
게다가 가끔 안에다가 이런 비밀 보상들을 숨겨놓는 경우들이 있다보니 더더욱 그냥 지나치기엔 아깝다. 물론 엘든링같은 솔로 플레이 위주 게임에서는 이런 데에 정말 귀중한 아이템을 두는 경우가 있어서, 지난번에 얘기했던 대로 이미 클리어한 던전을 다시 뒤져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런 게임에서는 이렇게 찾아낸 보물 상자에서도 그렇게 대단한 보상을 주진 않는다. 어찌되었건, 나중에 내가 게임을 설계하게 된다면 이런건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일장일단이 있는 부분인지라.
그렇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니 풍마룡의 에너지원 비슷한 뭔가를 다 없앴다면서 도시에 폭풍이 사라지던데, 사실 처음 풍마룡이 몬드에 나타나 에이스 컴뱃을 찍을 때 이후로 도시가 폭풍에 휘말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좀 뜬금없게 느껴졌다. 스카이림 같은 게임에서도, 마치 처음에는 당장 알두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단한 재앙이 펼쳐질 거라는 듯이 굴지만 정작 게임 하는 내내 그걸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없는데, 이 게임에서도 나는 몬드의 숲을 해메는 동안 몬드가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자유로운 탐험 파트를 좀 더 뒤로 미루고 도시가 폭풍에 잠긴 상태가 되서 한시라도 빨리 해당 던전들을 클리어하라는 동기부여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생각없이 돌아다닌 게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신상에 갖다 바칠 수 있는 수집품을들 몇개 모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상에 가져다 바쳤더니 스태미나 최대치를 늘려주는 것이 아닌가! 표절의 기준은 사실 굉장히 정의하기 모호하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순 있으며 난 이런 쪽으로 생각보다 관대하다 자신하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으로 월정액 5900원 중 2500원 정도는 야숨 제작진들에게 줘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싸돌아다니는 건 그만하고 일단 진도를 좀 나가자는 생각에 빠른 이동으로 몬드로 돌아와서, 게임을 끄기 전에 마지막으로 뭔가 변한게 있나 보고싶어 돌아다녔다. 그러다 분수가 눈에 보여서 얼음 원소 스킬을 썼는데, 분수가 얼어붙기는 커녕 얼음 발판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닌가? 분수에 들어갈 때 습기 상태가 되는 것은 구현해놓고 얼릴 수가 없다니. 도시에 사람을 후드려 팰 수 있을 정도의 자유도는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클릭 한 번 잘못했다가 경비병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나야 한다면 게임이 제공하고자 하는 분위기에서 심각하게 멀어지게 될태니 이해한다, 이 게임이 GTA도 아니고. 그런데 하다 못해 야숨은 마을 나무에 불을 지를 순 있었는데 분수가 얼지 않는다는 건, 이 게임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이었다. 아니, 분수 하나 얼렸다고 뭐 대단한 악당이 되는 것도 아닌데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분수 아랫부분에 고인 물 부분에 얼음 바닥만 생겼어도 이정도로 실망하진 않았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