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방탄유리야 2022. 12. 27. 01:33

난 야숨을 해본 적이 있다. 다만 야숨을 끝내지는 못했다. 야숨은 분명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시작하자마자 5분만에 '갓겜'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임이었으나, 게임을 하면서 그 사이사이 특유의 불편함들과 단점들이 계속해서 거슬렸다. 가령 생각보다 쾌적하지 않은 전투나, 툭하면 터지는 무기 같은 것들. 그리고 젤다 특유의 디자인도 개인적으로는 불호에 가까웠다. 감히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게임인 것은 맞으나, 분명 누군가한테는 호불호가 갈릴 게임이었다. 원신 플레이 일지를 적는 데 왜 야숨얘기만 하고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야숨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원신 게임을 하면서 야숨 생각이 나지 말라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원신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감상들도 모두 야숨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그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야숨에서는 없는 장점들이 생각보다 괜찮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1. 일단 야숨보다도 좀 더 아니메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디자인이 호감이었다. '윽, 네다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내가 야숨을 오래 붙잡고 있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야숨의 세계관과 젤다라는 캐릭터에 별로 크게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야숨은 위쳐3처럼 현실적이고 인간적이지도 않았고(이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JRPG 게임들처럼 아니메스럽지도 않았다. 야숨의 세계관과 디자인은 차라리 좀 더 동화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게 꼭 나쁘다던가, 아니면 위쳐3나 다른 JRPG 게임 같은게 꼭 좋다는 것도 아니다. 어찌됐건 개인적인 호불호로 야숨의 게임적 매커니즘은 재밌었지만 스토리와 세계관에는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렇게 아니메스러운게 오히려 장점처럼 느껴졌고, 이런 장르가 취향인 이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2. 그리고 같은 3인칭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키보드 마우스로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PC로 게임하는 게 더 익숙한 나에게는 굉장히 쾌적하게 느껴졌다. 당장 화살을 쏘기 위해 자이로센서를 켜서 조준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마우스로 편하게 시야를 돌리고 wasd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3. 무기 내구도 시스템, 느리고 불편한 수영, 스태미너를 많이 뚫어놓지 않았다면 얼마 달리지 않아도 금방 떨어지는 스태미너 등, 많은 이들에게 불호로 다가올 요소들 대신 훨씬 익숙하고 쾌적한 시스템 되어 있다. 야숨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깔려있는 의도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누군가는 이런 시스템을 더 좋게 생각했을 수 있지만 분명 불호가 더 많았을 디자인이었는데 그걸 개선함으로서 입문 장벽을 낮춘 것이다.

 물론 위에 쓴 것처럼 첫인상이 좋게 느껴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단 가장 큰 단점으로, 게임에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다. 이게 과연 표절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거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튜토리얼에서 설명해주는 원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벽을 기어오르는 탐험은 야숨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이 뿐만 아니라 무기를 휘두른 뒤에 무기가 등 뒤에 소환되어 거치되는 모습은 영락없는 니어 오토마타였다. 물론 액션 게임에 일본도 쓰는 캐릭터들 중에 데빌 메이 크라이의 버질 영향을 받지 않은 캐릭터가 없고, 중세 판타지 중에 반지의 제왕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다지만, 게임을 단 30분도 하지 않았는데 게임을 하면 할 수록 이 훌륭한 시스템과 모션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불바다 속에서 느껴지는, 이 참을 수 없는 익숙함

 그리고 또 한 가지 크게 다가온 단점으로, 가챠 게임이면서 온라인 게임이기에 느껴지는, 개인적으로 매우 꼬운 성장과 보상 시스템이 있다.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야숨과 같이 자유로운 여행과 탐험을 표방하는 게임으로서 이건 매우 큰 단점으로 느껴졌다. 원신을 시작하면서 처음 보코블린, 아니, 츄츄족 캠프에서 전투를 한 후 상자를 열었을 때, 플레이어가 과연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상자를 여니 몇 가지, 성유물이라는 이름의 장비와 몇몇 재화가 떨어졌지만, 게임을 오래 플레이 하지 않아도 이러한 보상 아이템들이 그리 크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야숨을 한 번 생각해보자. 비록 야숨에서는 무기들이 몇 번 휘두르면 터져나가고, 상자를 열었을 때 속성 화살들 몇 개 주고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기에 야숨에서 간단한 몬스터 무리 하나를 정리하고 얻게되는 무기들은 극적으로 대단한 성능을 내는 무기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게임에서 그 몇 발의 속성 화살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되면 이 사소한 보상은 한 발 한 발을 아껴 써야 할 귀중한 보상이 된다. 엘든링을 예시로 들어보자. 어느 구석에서 찾은 상자 하나를 열었더니, 한 빌드에서 게임이 끝날 때까지 쓸 수 있는 종결 무기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그런 무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무기 보상들이 게임 내에서 유일하고, 또 유용하고, 최소한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곤 한다. 이는 플레이어들이 오픈월드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커다란 동기가 된다. 그렇지만 원신의 상자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보상은 가챠를 통해 얻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장비'이다. 그리고 원신을 켜자마자 공지사항에서 광고하고 있는 픽업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몬스터 캠프를 털어 상자를 열었을 때 (실제로 그러한 방식으로 진짜로 캐릭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는 캐릭터의 성장 요소에서도 이어져, 내가 아무리 필드의 몬스터를 물리친다고 하더라도 내 캐릭터가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내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게 했다.

모바일 게임에 크게 현질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돌파'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아찔하다.

 사실, 위에 말한 단점들은 굳이 모바일 가챠게임이 아니더라도 당연한 것들이거나, 게임을 1시간 밖에 하지 않고 벌써부터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는 것들 일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기대되는' 단점들이 사실인지조차 아직 잘 모르니 말이다. 게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 같은 요소들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게임을 처음 하면서 느낀 것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봤다. 그래도 길게 쓸만한 것들은 벌써 적어서 다음엔 좀더 사소하고 짧은 감상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남캐는 배꼽이랑 명치를 까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좀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말이다.